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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와 억세게 운 좋은 사람

숭대시보

2008년 2월 19일

현대인들은 신조어들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듯하다. 학생들과의 대화중에 낯선 단어들이 튀어 나올 때면 빠르게 늘어만 가는 흰 머리카락 수 만큼이나 세대차이가 커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들 신조어들은 젊은이들의 재치와 신선함을 느낄 수 있어 싫지만은 않으나, 최근 회자되고 있는 신조어 하나만큼은 젊은이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 신조어는 금년 8월 출간된 우석훈씨의 책 제목인 『88만원 세대』이다. 이 신조어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2007년 전후의 한국의 20대를 지칭한 말로 비정규직의 평균 급여 119만원에 20대의 평균급여에 해당하는 73%를 곱한 88만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997년 IMF 이후 10년이 지난 한국사회의 자화상을 나타내는 가슴 아픈 신조어이다.



기성세대로부터 물려받은 IMF 후유증의 업보, 정규직 강성 노조들의 이기주의와 글로벌화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있는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더욱 줄어들게 만들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정규직 자리를 꿰차는 운 좋은 친구들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취업과 사은회 시즌이 되면 졸업 예정인 학생들은 억세게 운 좋은 친구와 운이 덜 따르는 친구들로 나누어지는 것을 매년 반복해서 보게 된다.



누구나 평소 별 볼일 없던 친구가 잘되는 경우 “저 친구는 참 운도 좋다”며 부러워하고 시기하던 경험이 종종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운 좋은 친구에게 다가온 행운이 나에게 다가온다면 그것이 나의 것이 될 수 있을까?



13년째 학생들을 지도하다보니 운 좋은 학생들과 운 덜 따른 친구들을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나름대로 『운 좋은 이』로 분류한 학생들은 예상대로 졸업 무렵에 여러 행운들중 가장 좋은 행운을 선택하여 자기 것으로 삼으며 『88만원 세대』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 억세게 운 좋은 친구들에겐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그들에게 다가올 다양한 종류의 행운들을 받아들일 나름대로의 그릇들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그릇들이 그 모양과 크기가 모두 달라 담는 물건이나 쓰임새가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다가오는 행운과 이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형태와 크기는 다양하다.



그렇다면, “나의 그릇은 어떤 종류와 어떤 크기의 행운을 담을 수 있는가?” 나의 그릇에 비해 모양이 맞지 않거나 너무나 큰 행운이 다가온다면 그 행운을 나의 그릇에 담을 수가 없고, 무리하게 나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그릇이 깨져버리는 좌절을 겪게 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행운을 담는 그릇은 줄일 수도 있고 늘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그릇은 평생을 통해 모양을 다듬고 크기를 늘려야 하지만, 가장 유연성이 좋은 시기가 20대이다. 때문에 대학생활은 바로 나의 그릇의 모양과 크기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시기임에 틀림없다. 『88만원 세대』의 딱지를 뗀 억세게 운 좋은 친구들은 지난 대학생활 동안 훌륭한 그릇을 다듬어 온 것이다.



승자독식의 게임 룰이 적용되고 있는 세계 경제 속에서는 『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일자리 부족문제가 하루아침에 해소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장을 개척해 나아가려면 나의 그릇을 정성껏 다듬어 나가야 할 것이다.



학기 중에는 그릇에 신경 쓸 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만큼, 다가올 방학은 나의 그릇을 다듬어 나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방학이 끝난 시점에는 우리 모두 조금 더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 되어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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